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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프레임,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책 리뷰

도전! 디지털 노마드/임씨의 책방

by 유목민 임씨 2023. 8. 2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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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 씌운다'라고 하면 인식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치판에서 정치인들이 삿대질을 해 가며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대방이 한 말에 이런 소리를 하면 사이가 틀어지기 십상이다. 책의 저자인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말하는 프레임은 약간은 다른 프레임이라고 볼 수 있다. 심리학 교수님답게 많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책을 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심지어 책의 맨 뒤엔 9p에 걸쳐 참고문헌을 정리해 놓았다. 교수는 범인은 불가능할지도..). 하지만 절대 어려운 책이 아니다. 심리학 책이라 하면 보통 어려운 심리학 용어가 나오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쉽게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하여 그림을 사용하여 예시를 설명하기도 하고, 심지어 한 챕터를 다 읽고 나면 이 챕터의 주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짧게 정리까지 되어 있다. 아침에 읽기 시작해서 중간중간 딴짓도 좀 하다 저녁쯤 다 읽고 바로 책 리뷰를 작성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책과 관련된 딴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내가 한 딴생각 얘기를 해볼까 한다. 

1951년 미국 스와츠모어 칼리지 캠퍼스에서 진행된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실험

 피실험자는 표준선과 비교선의 길이를 비교하여 표준선과 같은 길이의 비교선을 찾아야 하는 너무나도 간단한 실험이었다. 99%의 정답률을 피실험자들은 보여주었다. 다음으로는 조건을 조금 변화시켜 7명의 동조자들을 투입시켰다. 동조자들끼리는 사전에 어떤 답을 해야할지 합의가 되어 있는 상태, 2회 차까지는 모두 정답을 말했다. 3회 차부터 동조자들은 모두 같은 다른 답을 고르기 시작했다. 명백히 2번 비교선이 표준선과 같은 길이임에도 3번 표준선을 고르는 식이였다. 실험 결과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사람은 25% 뿐이었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면 한 번이라도 다수를 따라간 사람이 75%나 된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조자 중 다른 사람이 생겼을 때다. 동조자 중 파트너 선정해 정답을 말하게 한 것이다. 피실험자에게 동료, 친구를 만들어 준 것과 같았다. 이때 정답률은 100%에 가깝게 올라간다.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힘은 '내 편 한 사람'

 여기서부터 진짜 흥미로워지는데, 같은 조건에서 파트너가 다른 동조자들이 선택한 답이 아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닌 제 3의 답을 말할 때이다. 나(피실험자)와는 의견이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동조자들)과도 의견이 다른,  새로운 의미의 동지인 셈이었다. 이때에도 실험 결과는 동일하게 100%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최인철 교수는 이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우리가 상황이 아닌 사람 중심의 프레임만을 사용한다면 다수의 의견에 가끔씩 동조하는 보통의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비난하게 된다. 또한 소신을 지키는 소수 사람들을 발굴하는 것으로 상황을 개선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해결책은 집단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집단의 다양성은 개성을 보장하고 소신을 키워준다. 역사적으로 지나치게 문화적 동질성을 추구했던 사회는 예술적, 지적 정체를 경험했다'. 
 이 문단을 읽으며 한국 사회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외국인 근로자을 대놓고 인종차별하진 않지만 인식 기저에 깔린 무시,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들을 곱게 보지 못하는 시선, 심지어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북한 사람들과 섞이게 되면 폭동 등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한국의 다양성과 관련해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이 쓴 [사회적 다양성]이라는 기사의 끝부분을 소개하고 마치고 싶다. 

 조선왕조실록은 사회가 다양성을 잃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17세기 중반 조선의 최고위층 인사들 다수는 대단치 않은 집안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동체의 어려운 개혁과제들을 상당한 수준에서 해결했다. 그런데 100년 뒤 상황은 역전된다. 당시 최고위층 인사들 다수는 그들 아버지도 최고위층이었고, 그들 아들도 그랬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 이익에는 민감해도 사회 개혁 추진에는 무능하거나 무기력했다. 이 경향이 구체적 형태와 구조로 완성된 것이 세도 정권이다. 세도 정권은 19세기에 성립되지만 이미 그 앞 시대부터 자리 잡았다. 조선의 가장 큰 사회구조는 가문과 과거시험이었다. 세도 정권은 이 두 가지가 가장 높은 수준에서 결합된 결과물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가문 출신의 엘리트들로 이루어진 정권이 세도 정권이다. 그 끝이 무엇이었는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미국이 ‘있어 보이려고’ 사회적 다양성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공동체가 가진 문제를 치유하고 사회를 전진시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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